2015년 6월 26일

강철의 령장을 모시여 우리는 승리하였다

미제가 이 땅우에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 때로부터 어느덧 65번째 년륜이 새겨졌다.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으로 심장의 피가 펄펄 끓는 이 시각 우리 천만군민의 뇌리에 더더욱 새겨지는 철의 진리는 무엇인가.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민족의 영예는 강철의 담력과 드센 배짱을 지니신 걸출한 령도자에 의하여 굳건히 수호된다!

언제나 맞받아나가는 공격정신,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달려드는 침략자들에게 즉시적이고도 무자비한 철추를 안기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침략전쟁의 검은구름이 휘몰아쳐오던 1950년 여름의 준엄한 그 나날들을 되새겨볼 때면 천만군민을 조국수호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고 비범하고 뛰여난 군사적지략으로 미제침략자들에게 단호한 징벌을 안기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모습이 가슴뜨겁게 안겨온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류력사에는 우리 수령님처럼 한평생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고 반제대결전의 최전방에서 특출한 군사전략과 령군술로 백승을 떨쳐온 만고의 령장,문무를 겸비한 장군형의 수령은 일찌기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새 조국건설의 우렁찬 마치소리가 울려퍼지던 이 땅우에 평화로운 일요일의 하루가 밝아오고있었다.

바로 그 시각,극악한 원쑤 미제는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질렀다.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전쟁준비를 다그쳐오던 미제는 침략의 피비린내나는 군화발을 내짚으며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해방된지 5년,창건된지 불과 2년도 안되는 청소한 우리 공화국과 세계《최강》을 떠드는 미제와의 전면전쟁,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판가리되는 준엄한 시련의 그 시각 이 땅에 뢰성치던 백두령장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오늘도 력사의 메아리로 울려퍼지고있다.

놈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소.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

시시각각 엄중해지는 전선형편을 놓고 누구라없이 우려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있던 일군들은 비범한 예지의 안광,령활무쌍한 지략으로 빛발치는 백두산천출위인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르며 전쟁승리에 대한 신심으로 가슴끓이였다.

항일대전의 나날 《아시아의 맹주》라고 자처하던 일제의 명줄을 한손에 거머쥐고 쥐락펴락하시며 호된 징벌을 안기시던 항일빨찌산대장 김일성장군!

백두의 뢰성마냥 천출명장의 단호한 선언이 이 땅에 울려퍼졌다.

적들의 불의의 침공에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정녕 그것은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고 일떠선 조선인민은 결코 어제날의 노예가 아니며 그 어떤 제국주의침략자들과도 용감히 싸워 반드시 승리하고야말것이라는 백두산천출위인의 억센 담력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초기에 벌써 맞받아나가는 적극적이며 혁명적인 전략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쥐시였다.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군사정치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를 천리혜안의 예지로 분석판단하신데 기초하시여 적들을 전반적으로 격멸소탕할수 있는 요진통을 단번에 찾아쥐시고 강의한 의지와 결단력,뛰여난 령군술로 작전을 주도세밀하게 조직지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뛰여나고도 령활한 군사적지략에 의하여 우리 인민군용사들은 반공격개시 3일만인 6월 28일 서울상공에 공화국기발을 자랑높이 휘날리였다.

련속공격작전방침을 제시하시고 완강한 의지와 전개력으로 그것을 빛나게 실현해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인민군부대들은 한달 남짓한 기간에 공화국남반부지역의 90%이상과 인구의 92%이상을 해방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얼마나 많은 전투들이 미제를 경악케 하고 조선의 운명을 두고 우려하던 세상사람들을 놀래웠던가.

우리의 영웅적해병들은 전쟁이 일어난지 며칠만에 주문진앞바다에서 단 4척의 어뢰정으로 적들의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격침시키고 경순양함을 격파하였다.

이것은 세계해전사에 없는 승리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위력의 일대 과시였다.

미일군사전문가들이 《오산의 비극》으로 《미군의 비극적인 패주의 첫막》이 열렸다고 론평한 오산전투는 또 얼마나 통쾌하였던가.

누구나 보기만 하여도 떨것이라고 우쭐렁거리던 미제의 《상승사단》의 선견대가 우리 인민군대의 강력한 타격을 받고 순식간에 풍지박산이 되였고 《불퇴의 선》이라고 장담하며 구축해놓았던 금강방어선이 단 이틀사이에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지고말았다.

《상승사단》이라고 떠들던 미제의 24보병사단이 대전해방전투에서 완전히 괴멸되였으며 사단장은 병사옷을 갈아입고 도망치다가 포로가 되는 광경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불타는 조선,싸우는 조선을 바라보고있던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 인민군대의 기적적승리를 두고 희세의 천출명장의 전략은 하늘에 닿고 그 빛나는 지략은 신기하기 이를데 없다고 진정으로 격찬해마지 않았다.

총포성이 울부짖던 전화의 나날 몸소 최전선에까지 나가시여 백승의 지략을 펼쳐주시고 싸우는 전사들과 인민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며 우리 군대와 인민을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

그이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사랑과 믿음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패의 힘의 원천이였으며 전쟁승리의 결정적담보였다.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이 깨뜨려버리고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은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빛나는 승리,

참으로 그것은 신념과 의지에 있어서나 배짱과 기상,지략과 령군술에 있어서 이 세상 누구도 따를수 없는 가장 걸출한 백두령장을 높이 모시여 이룩된 력사의 기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전승업적은 백두의 천출명장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여 더욱 빛을 뿌리게 되였다.

미제를 타승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령군술을 그대로 체현하신 위대한 김정일동지는 필승불패의 선군정치로 인민군대를 최정예전투대오로 더욱 강화발전시키시고 전대미문의 사회주의수호전을 련전련승에로 이끄시여 우리 나라를 군사강국의 지위에 올려세우신 불세출의 선군령장이시다.

백두의 산악과도 같은 필승의 신념과 험산준령도 단숨에 넘고 헤칠 담대한 배짱과 담력을 지니신 또 한분의 위대한 선군령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신 천만군민은 우리의 생명이고 자주이며 존엄인 선군의 기치를 변함없이 높이 추켜들고나가고있다.

6.25의 검은구름이 휘몰아쳤던 이 땅우에 승리의 7.27의 축포성이 영원히 메아리친다.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노도쳐 전진해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강성번영하는 이 땅우에 맑고 푸른 하늘만을 펼쳐놓을것이다.

총공격시간 새벽 5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은 그 어느 위인과도 대비할수 없는 위대한 령도자,위대한 혁명가,위대한 인간이시였습니다.》

주체39(1950)년 6월 28일의 새벽 5시는 어떻게 시작되였고 어떻게 흘렀던가.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하나의 이야기가 뜨겁게 전해지고있다.

우리의 영용한 인민군대가 적들의 불의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반공격에로 넘어가 서울을 해방하기 위한 총공격진지를 차지하였던 주체39(1950)년 6월 27일 저녁이였다.

최고사령부 작전대를 마주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은 참으로 무거우시였다.

한밤중에 총공격을 들이대면 인민들의 생명재산과 귀중한 문화유적들이 피해를 입을수 있다는것을 생각하신것이다.

수천년의 전쟁사는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쟁에서는 인정이나 동정이 있을수 없다는것을 보여주었다.

승리가 내다보이는 공격진지에서 과연 인민들의 생명재산의 피해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그러나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은 그것을 생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에 서울로 공격해들어가면 서울시민들이 상할수 있고 또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적들이 손상될수 있다는것을 헤아리시고 공격에 좀 불리하다 하더라도 날이 밝은 다음에 서울로 공격해들어갈것을 명령하시였다.

오직 인민을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이시기에 시각을 다투는 중요한 전투를 작전하고 지휘하실 때에도 먼저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해가 끼칠세라,문화유적들에 손상이 갈세라 그토록 깊은 관심을 돌리신것 아니랴.

이렇게 되여 만단의 준비가 갖추어지고 승리가 약속된 서울해방전투가 옹근 하루밤이나 미루어지는 전쟁사상 전례없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이러한 철의 용단과 결심앞에서 인민들은 격정에 목메였고 원쑤들은 전률하였다.

[공식문건] 남조선의 참혹한 로동실태를 폭로한다

최근 괴뢰패당은 그 무슨 《노예로동》이니 뭐니 하는 험담을 줴쳐대며 우리 해외파견근로자들을 목표로 한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에 열을 올리고있다.

남조선을 현대판 중세기적고역장으로 전락시킨 괴뢰들이 생뚱같이 《북해외파견근로자인권문제》를 걸고 또 하나의 반공화국모략소동에 매달리는 철면피한 추태는 내외의 치솟는 분노와 조소를 자아내고있다.

조국통일연구원은 괴뢰패당의 반인민적통치로 하여 참혹한 지경에 이른 남조선근로자들의 로동실태를 만천하에 까밝히는 백서를 발표한다.

로동의 권리는 인간의 가장 초보적인 권리이며 실업은 곧 생존권의 박탈을 의미한다.

오늘 남조선에서는 실업자대렬이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심각한 사회적문제로 되고있다.

2013년에 350여만명이였던 실업자가 2014년에는 450여만명으로 늘어났으며 그중 취업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은 무려 50여만명이나 된다.

하루 또는 몇개월정도 고용되여 일하며 얼마 안되는 임금을 받는 반실업자도 800만명에서 1 000만명으로 증가하였다.

더우기 심각한것은 청년실업문제이다.

올해초 청년실업률은 21.8%로서 1997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무리로 파산되여 실업대란이 초래되였던 때보다 더 늘어나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한 성원국과 지역들의 평균실업률보다 더 높은것으로 평가되고있다.

그리고 20대 청년들의 일자리는 4만 3 000여개,30대 청년들의 일자리는 2만 1 000여개나 줄어들어 청년 4명중 1명은 실업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업을 얻지 못하여 거리를 방황하고있는 청년들만 하여도 275만여명으로서 최고수준에 이르고있다.

서울시만 보더라도 청년실업률은 31.8%로서 청년 3명중 1명은 무직자이거나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지고있다.

결과 남조선에서는 대학졸업후 일자리가 없어 대출받은 학비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들을 가리키는 《청년실신》,장기간 미취업자라는 뜻의 《장미족》,20대의 90%는 백수(직업없는 사람)라는 뜻에서 《이구백》,20살도 되기 전에 직장에서 쫓겨난다는 뜻에서 《이퇴백》 등 극심한 취업난에 직면한 청년들을 가리키는 별의별 해괴한 류행어들이 다 나돌고있다.

남조선에서 청년실업문제의 심각성은 청년들이 사랑,결혼,해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여기에 집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5포세대》로 불리워지고있는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실업사태는 현 남조선당국이 고용률 70%달성을 구실로 림시직,일용직과 같은 불안정한 비정규직수를 늘이고 해고는 쉽게 할수 있도록 로동시장구조개악을 추진한 결과에 의해 초래된것이다.

이것은 지난 4월 《새누리당》정책연구기관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서 청년실업의 책임이 현 당국에 있다는 대답이 73.6%에 달한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집권자는 해외에 나가야 직업을 얻을수 있다고 하면서 수많은 남조선청년들을 해외로 마구 내몰고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차례지는것은 온갖 민족적천대와 멸시,비참한 죽음뿐이다.

2013년 10월 오스트랄리아에 가서 쓰레기를 주어담는 일에 종사하던 23살 난 한 남조선처녀는 공원에서 머리타박상을 입고 숨진 상태로 나타났고 12월에는 그 나라에서 여기저기 떠돌며 품팔이를 하던 28살 난 남조선청년이 한 개인집의 뒤마당에 시체가 되여 묻혀있다가 발견되였다.

지난해 6월 외국의 한 식당에서 견습생으로 고역살이를 하였던 23살 난 청년은 《접시만 닦으며 살았다.》,《최저임금도 못 받고 휴식일도 없이 하루 12시간이상 강제로동에 시달렸다.》,《집에 갈 날만 세다가 돌아왔다.》고 증언하였다.

한 로조관계자는 《당국이 현지의 로동조건과 환경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아무런 검토도 없이 무작정 청년들을 사지판에 내몰고있다.》고 단죄하였다.

남조선에서 계약기간이 1년미만인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로동자의 비중은 37.1%로서 주요자본주의나라와 지역가운데서 가장 높다.

남조선에서 비정규직로동자가 정규직로동자로 된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더욱 기막힌것은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자녀들도 비정규직으로 되여야 하는 《현대판신분제도》가 횡행하고있는것이다.

성공회대학교의 한 교수는 《비정규직의 직업이동연구》라는 론문에서 부모가 비정규직인 자녀의 비정규직비률이 78%라고 주장하여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남조선언론들은 지금 남조선사회는 부모의 신분이 천민이면 자식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천민이 될수밖에 없었던 과거 봉건사회를 닮아가고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비평하였다.

남조선에서 《온전한 직업》을 가졌다고 하는 정규직로동자들도 언제 실업자로 될지 몰라 불안과 공포에 떨고있다.

정규직로동자들은 회사측이 자의대로,비공개로 정하는 《살생부》명단에 자기 이름이 오르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와 걱정속에 하루하루를 간신히 연명해가며 참담한 현실속에서 살아가고있다.

실로 남조선은 일하고싶어도 또 일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있어도 일을 할수 없는 세계최악의 실업지역으로 되고있다.

일정한 직업과 함께 로동조건과 환경보장은 로동권의 중요한 징표의 하나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에도 모든 사람은 공정하고 유리한 로동조건을 보장받으며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평등하고 합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밝혀져있다.

그러나 남조선에서는 로동자들이 극도로 렬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하며 비인간적인 로동을 하고있다.

경제적리윤만을 추구하는 재벌기업들은 로동자들을 초보적인 로동보호,안전대책도 세워지지 않은 죽음의 고역장들에 마구 내몰고있다.

2013년 5월 《로동자들의 무덤》,《최악의 살인기업 1위》로 악명떨치고있는 어느 한 제철소에서는 5명의 로동자가 전기로에서 보수공사를 하다가 가스질식사고로 숨지고 그해 11월에도 독성가스가 루출되여 작업중에 있던 9명이 피해를 입고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2013년 한해동안 그 제철소에서 산업재해관련 규정을 위반한 건수는 1 123건이며 그로 인한 사망자수는 10명에 달하였다.

뿐만아니라 주요선박회사들에서는 지난해에만도 산업재해로 30명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올해에도 1월 21일 부산의 한 조선소구내의 기중기에서 기계실이 철거도중 바닥에 떨어져 그밑에 있던 4명의 로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3월 25일 경기도 룡인시의 한 도로공사장에서는 건설중이던 다리상판이 무너져내려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당하는 참변이 일어났다.

남조선관계당국이 축소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남조선 전지역에서 지난해에만 하여도 산업재해피해자수는 하루평균 240여명에 달하는 9만 900여명이였으며 그중 사고로 인한 피해자수는 8만 3 200여명,유해물질에 의한 직업병피해자는 7 600여명이였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주요자본주의나라들에 비해 무려 2~4배로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있다.

남조선로동자들은 유독성물질에 의해 각종 직업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고있다.

지난 시기 삼성전자의 회사들에서 일하였던 로동자들가운데 160여명이 각종 암,백혈병,뇌종양,신경통 등에 걸려 고통받고있으며 그중 지난해까지 100여명이 사망하였는데 이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한 로동자는 병을 앓다가 사고가 나면 치료비와 기계수리비용을 본인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산업재해로 처리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로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있다고 울분을 터치였다.

장시간 정신육체적으로 가혹한 로동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로동자들의 고통은 말할수 없이 크다.

어느 손전화기용축전지조립공장에서 일하는 한 로동자는 노예처럼 혹사당하는 자기들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였다.

《쉬는 시간은 오전 10분,오후 10분이 전부다.고개를 들 짬도 없이 축전지를 끼우다가 손톱 두개가 새까맣게 죽어 빠졌다.팔에 마비가 와도 자리를 비울수 없다.허리를 펼새없이 저녁퇴근시간이후에는 김밥 한덩어리로 끼니를 때고 야간작업에 들어가야만 한다.》

어느 피복판매업체에서 일하였던 로동자도 《고용주에게 속아 매일 14~15시간씩 고된 일을 하였는데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 쓰러진적도 있었다.》고 하였으며 음향기재회사에 다니는 로동자는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것은 아파도 휴가를 갈수 없는것이였다.인력이 부족해 한명이 빠지면 남은 직원들은 밥도 못 먹고 야근을 해야 했다.》고 한탄하였다.

지난해 8월 미국 CNN방송까지도 남조선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로동자들의 한주일로동시간은 세계근로자의 평균로동시간보다 12시간 길다,남조선로동자들은 하루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도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이렇게 남조선로동자들은 살인적인 로동에 시달리고있지만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있다.

지난해 남조선에서 최저임금마저 아예 받지 못한 로동자수는 227만명으로서 2012년에 비해 57만명 늘어났으며 밀린 임금,퇴직금 등을 받지 못한 로동자수도 29만여명으로서 2009년이후 최고수치를 기록하였다.

남조선의 저임금근로자비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한 나라와 지역들가운데서 가장 높다.

그러니 어찌 남조선근로자들의 처지를 놓고 노예나 다를바 없다고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용하는 남조선에서는 근로자들의 인권을 무참히 유린하고 짓밟는 고용범죄가 거리낌없이 감행되고있다.

심각한것은 사회적보호를 받아야 할 소년들과 장애자,녀성들이 《헐한 임금으로 부려먹기 쉬운 로동력》으로 취급되고있는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소년로동은 금지되여있지만 오늘 남조선에서는 10대의 청소년들이 혹독한 강제로동에 시달리고있다.

올해 1월 남조선의 한 잡지는 다음과 같이 폭로하였다.

《10대의 청소년들은 법적책임을 물을 고용주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알기 힘든 간접고용,래일 일거리가 있을지 없을지도 알수 없는 1일고용,로동법의 적용조차 기대할수 없는 특수고용 등 불안정한 일자리들에서 노예적인 착취를 당하고있다.사회의 밑바닥을 맴돌며 일하는 그들에게 로동은 지옥의 문을 여는것과 같다.최저임금마저 벌금이나 위약금 등의 명목으로 모두 떼우고있다.휴식일수당금,산업재해보상금같은것을 받는다는것은 꿈속에서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의 한 배달업체에 고용된 10대 소년도 《하루평균 40~50건의 주문을 배달하려면 13시간의 장시간로동에 시달려야 한다.하지만 사용료와 밥값 등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은 서너시간 일한 값밖에 되지 않는다.》고 증언하였다.

현재 서울시내 각종 봉사부문에서 일하는 청소년가운데 계약서도 없이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는 10대의 청소년들은 74.2%나 된다고 한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장애자들에 대한 로동력착취는 사람들의 치를 떨게 하고있다.

지난해 온 남조선땅을 들었다놓은 염전노예사건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전라남도 신안군의 어느 외딴섬에서 소금밭을 경영하는자는 현대판노예상인들이 팔아넘긴 10여명의 장애자들을 포로수용소와 같은 시설에 감금해놓고 마소보다도 더 가혹하게 혹사시키면서 부려먹었다.

지어 그들이 일을 잘못하면 벌을 준다고 하면서 몸을 쇠사슬로 묶어 개우리에 처넣는 만행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또한 하루 4~5시간밖에 재우지 않고 일할것을 강요하였고 로임은 한푼도 주지 않았으며 너무 힘들어 조금만 앉을 기미를 보여도 각목과 삽,쇠몽둥이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하였다.

한 피해자는 《많은 돈을 준다는 말에 속아 동료와 함께 섬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개먹이를 끓여 밥으로 주었고 배가 고파 집에 보내달라고 하자 3일동안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팼다.》고 폭로하였다.

48살 난 피해자도 《거간군들을 따라 그곳에 가보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중로동에 시달려야 했고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아 거의나 굶다싶이 하였으며 게으름을 피운다는 리유로 몽둥이에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포악무도하고 잔인한 만행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너무도 억이 막혀 땅을 치면서 관계당국에 범죄자들의 죄행을 조사하고 엄벌에 처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관계당국은 소금밭주인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극구 비호두둔해나섰다.

남조선에서 녀성로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세계최악의 수준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남조선에서 25살-54살 녀성들의 경제활동참가률과 고용률은 각각 62.8%,61.2%로서 이 기구에 소속된 나라와 지역들가운데서 가장 낮았다.

남녀임금격차도 37.4%로 가장 높아 세계 1위를 기록하였으며 산전산후휴가를 받는 녀성은 10명중 2명에 불과하여 최저수준이였다.

더욱 문제로 되는것은 직장에서 녀성로동자들에 대한 성폭력행위들이 우심하게 나타나고있는것이다.

고속도로봉사업체에서 일하고있는 한 녀성로동자는 《소장이라는자가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녀성로동자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추잡하게 놀아도 일자리를 떼울가봐 말 한마디 못한다.》고 울분을 토로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남조선에서 성희롱으로 고통받은 녀성로동자는 2013년에 비해 두배나 늘어났다.

피해를 입은 사실을 고발하는 녀성근로자들의 대부분이 강제해고당하고있다.

올해 3월 영국잡지 《에코노미스트》는 남조선에서 녀성차별이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하다고 조소하였다.

실로 남조선은 처참한 로동지옥,중세기적인 고역장이다.

착취와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기마련이다.

지금 남조선의 광범한 근로대중은 현 당국의 반인민적인 친재벌,반로동정책에 사생결단으로 항거해나서고있다.

삶의 막바지에 빠진 로동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으로,공장굴뚝과 차디찬 땅바닥에서 몇개월씩 시위투쟁을 벌리는것으로 자기들의 분노와 의지를 보여주고있다.

올해에만도 2월 전라남도 곡성군의 한 다이야공장에서 40대의 로동자가 분신자살하고 3월에는 부산의 한 술공장에서 370일이상 파업투쟁을 벌리던 로동자가 자기 집에서 숨진채 발견되였다.

지난 5월 10일 현 집권자의 동생이 운영하는 어느 한 회사의 로조간부가 자기 집주변의 야산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사건은 커다란 사회적충격을 주었다.

그는 지금껏 두차례나 해고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첫번째 해고후 3년만에 복직되였지만 회사측에서는 그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으며 끝내 다시 해고시켰다.

관계당국과 결탁하여 정리해고소동으로 로조성원들을 박해하는 회사측의 악행에 분노한 그는 《끝까지 싸워 꼭 승리하십시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의 길을 택하였다고 한다.

5월 11일에도 대규모의 정리해고소동이 벌어진 어느 한 회사의 전 로조간부가 시체로 발견되였다.

그 회사는 무차별적인 정리해고로 하여 《제2의 쌍룡자동차》로 알려져있다.

올해 1월에만도 377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선포하고 4월 1일부터 그것을 강행해온데 대해 그는 죽음으로 항거해나섰던것이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로조탄압과 정리해고소동에 시달리다가 자살의 길을 택한 로동자수만도 20여명에 달하고있다.

죽음을 각오한 로동자들은 고공롱성투쟁까지 벌리며 항의해나서고있다.

금속로조소속 로조원들은 해고된 쌍룡자동차공장 로동자들의 전원 복직과 비정규직철페 등을 요구하여 15만 4 000V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장기간 롱성투쟁을 벌리였다.

경상북도 구미시의 화학섬유업체에서 해고로동자가 45m 굴뚝우에서 300일동안,쌍룡자동차회사 로동자가 70m 높이의 공장굴뚝에 올라가 100여일동안 항의롱성을 하였다.

통신업체의 비정규직로동자들도 20m 높이의 광고판우에서 80일간이나 투쟁을 계속하였다.

남조선당국의 반인민적악정에 항거하는 로동자들의 투쟁은 탄압의 도수가 높아질수록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고있다.

2013년 12월 남조선 전지역에서는 철도를 민영화하여 외국독점자본과 매판자본의 배를 불리여주려는 당국의 반인민적정책에 항거하는 대중적인 파업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은 철도로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대면서 철도로조원 190여명에 대한 체포령장을 발부한데 이어 무려 8 500여명의 로동자들을 집단해고하는 등 탄압책동에 광분하였다.

지어 철도로조지도부 성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60여개 중대 5 000여명의 경찰병력을 내몰아 민주로총본부를 들이치는 파쑈적폭거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민주로총은 현 집권세력과 전면전쟁을 벌릴것을 선언하고 결의대회,파업 등을 줄기차게 이어갔다.

특히 올해 5.1절을 계기로 벌어진 민주로총의 총파업투쟁은 더이상 참을래야 참을수 없는 현 집권세력의 반인민적악정에 대한 로동자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의 분노와 항거의 분출이였다.

남조선공안당국은 적수공권의 시위자들에게 독성최루액과 물대포를 쏘아대고 폭행을 가하며 무더기로 강제련행하는 무지막지한 깡패행위를 감행하였다.

이에 더욱 격노한 남조선로동자들은 지금 그 어떤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6월에도 총파업투쟁을 계속 벌려 자기들의 정당한 요구를 끝까지 실현하고 현 《정권》을 단호히 심판하기 위해 궐기해나서고있다.

이것은 그 어떤 강권과 폭압으로도 생존권을 쟁취하고 사수하려는 남조선로동자들의 정의의 투쟁을 가로막을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남조선에서 더는 살수 없게 된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지옥같다.》,《인간답게 살고싶다.》고 하면서 정든 고향을 등지고 해외로 떠나고있다.

이에 대해 지난해 미국의 한 인터네트싸이트는 인구 10만명당 해외이민수를 비교했을 때 남조선은 1 680명으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다고 폭로하였다.그러면서 해마다 평균 2만 5 000여명이 남조선을 떠나고있는데 남조선을 세계적인 《이민왕국》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것이라고 비평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20대 청년들이 《이민계》라는것까지 내오고 타국으로 가고있는데 이에 대해 한 대학교수는 이것은 결국 청년들이 남조선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결과라고 개탄하였다.

제반 사실은 남조선이야말로 세계최악의 인권불모지,민주주의와 인권이란 그림자조차 찾아볼수 없는 암흑사회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남조선집권세력이 참다운 인민적시책이 실시되는 우리 공화국의 가장 우월한 로동제도와 그에 보답할 일념으로 창조적열정을 다 바쳐가는 우리 해외파견근로자들의 로동생활을 감히 시비중상하고 모독하는것은 가소롭기 그지없는 도발적망동이다.

괴뢰패당은 외세와 야합하여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에 광분할수록 파멸의 운명만을 재촉하게 된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듯이!

신천박물관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는것처럼 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을 떠나서 사람들의 자주적삶과 인간의 존엄,가치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계급교양을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황해남도당위원회가 경애하는 원수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계급교양작전을 새롭게 짜고들고있다.

분계연선지구에 위치한 도의 지역적특성에 맞게,또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승냥이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야수적만행이 가장 악랄하게 감행된 고장의 특성에 맞게 도당위원회에서는 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사업에 특별히 큰 힘을 넣어 좋은 성과를 거두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의 승리,사회주의승리는 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데 중요하게 달려있습니다.》

도당위원회가 계급교양작전을 짜고들면서 특별히 중시한 문제는 위원회안의 모든 당일군들이 계급교양에 대한 관점을 바로가지도록 한것이다.

주관부서나 해당 단위의 일군들만 계급교양을 하는것이 아니라 도당위원회의 모든 부서,모든 일군들이 다 계급교양사업에 관심을 돌리도록 하였다.

그 대표적인 표현으로 도계급교양관을 새롭게 꾸리는 문제를 실례들수 있다.

지난 기간 도당일군들은 계급교양사업이 중요하다고 말은 많이 하면서도 도계급교양관을 꾸리는 문제에는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다.결국 도계급교양관의 내부와 외부가 계급교양거점답게 꾸려지지 못하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신천박물관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주신 말씀을 받아안고 도당일군들은 그 어느 단위들보다 먼저 도계급교양관에 눈길을 돌리였다.도육아원,애육원건설과 소년회관건설을 비롯하여 도적으로 진행되고있는 건설이 한둘이 아니였지만 도당일군들은 도계급교양관개건사업을 매우 중시하고 여기에 당사업의 화력을 집중하였다.

도계급교양관에 전시할 자료와 증거물들을 수집하는 사업과 강사들의 강의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에 모든 일군들이 떨쳐나섰다.그 나날 도당일군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왜 그토록 계급교양사업을 중시하시였는가를 다시금 심장깊이 절감하게 되였으며 정세가 긴장하고 조건이 어려울수록 계급교양사업에 더 큰 힘을 넣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되였다.

도당위원회에서는 도당일군들이 투철한 반제반미계급의식을 지니고 계급교양의 전렬에 서도록 하기 위한 조직사업도 잘 짜고들었다.도당일군들이 해당 군들에 대한 지도사업을 내려갈 때면 의례히 군계급교양관과 리계급교양실을 찾아가 그 단위에 어떤 내용들이 있으며 또 계급교양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무엇인가를 료해하고 대책도 세워주도록 하였다.

그것은 도당위원회의 좋은 기풍으로 되였으며 도당일군들에게는 훌륭한 대학과정으로 되였다.

도당위원회가 계급교양작전을 힘있게 벌리는데서 중시한 문제는 또한 각급 당조직들이 계급교양사업을 한시도 늦춤이 없이,한순간도 소홀히 함이 없이 줄기차게,실속있게 진행하도록 한것이다.

지난 시기에 진행된 계급교양사업들은 한마디로 틀에 박혀있었다.

참관사업과 복수결의모임을 비롯한 계급교양사업이 기념일들이나 그 어떤 계기때에만 일정한 틀에 맞춰 진행되여왔다.말하자면 계급교양이 정상적인 사업으로가 아니라 행사식으로 진행되군 한것이다.

도당위원회에서는 여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각급 당조직들에서 그 어떤 환경과 조건에도 구애됨이 없이 계급교양을 항시적으로 실속있게 벌려 인민들의 가슴속에 투철한 반제반미계급의식과 주적관을 깊이 심어주도록 하였다.

여기에 도안의 선전선동력량이 총동원되였다.

도안의 당조직들은 방송선전차와 포전방송기재들을 리용하여 시,군소재지들과 농장벌마다에서 신천땅과 도의 곳곳에서 감행된 미제승냥이들과 계급적원쑤들의 야수적만행자료를 통한 계급교양의 집중포화,련속포화,명중포화를 들이댔다.

그리하여 온 도를 계급교양열풍으로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였다.

도계급교양관 강사들이 준비한 예술선동을 비롯하여 도안의 각급 당조직들에서 진행한 다양한 주제의 계급교양사업들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가슴마다에 원쑤격멸의 의지가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하였다.

도당위원회가 계급교양작전을 힘있게 벌리는데서 중시한 문제는 다음으로 계급교양을 혁명과업수행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하도록 한것이다.

연안군당위원회와 신천군당위원회,안악군당위원회를 비롯하여 각급 당조직들은 들끓는 포전에서,마을에서,교정에서 원쑤들의 만행자료를 통한 원리교양,실물교양을 실효성있게 진행하여 군안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계급의식을 더욱 높여주었다.

황남공업대학,김종태해주제1사범대학의 당조직들과 근로단체조직들에서도 구내와 복도들에 직관물들을 게시하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활발히 진행하여 대학생들이 계급투쟁의 진리를 물처럼,공기처럼 들이키며 혁명의 대,복수자의 대를 꿋꿋이 이어나가게 하였다.

도당위원회의 지도밑에 진행된 이 모든 계급교양사업들은 응당한 실효를 안아왔다.

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이 활발히 진행되고있는 연백벌과 재령나무리벌을 비롯한 도안의 농장벌들과 도육아원,애육원건설장,소년회관건설장 등 전투장들마다에서는 새로운 혁신의 소식들이 끝없이 전해지고있다.

그렇다.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듯이!

이것은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변할수 없는 계급투쟁의 교과서이며 최후승리의 보검이다.

황해남도당위원회의 경험은 각지 당조직들이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는것처럼 인민들에 대한 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의 도수를 더욱 높여나갈 때 우리 당의 계급진지를 철통같이 다져나갈수 있다는것을 다시금 확증해주고있다.

2015년 6월 25일

조선전쟁의 도발자 미제

조선전쟁(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은 미제가 전조선반도를 강점하고 조선민족을 노예화하기 위하여 감행한 침략전쟁이다.

자기의 아시아지배전략을 실현하는데서 조선반도가 차지하는 지정학적위치와 전략적중요성을 잘 알고있는 미제는 100여년전부터 조선에 침략의 마수를 뻗쳐왔다.

1945년 9월 《해방자》의 탈을 쓴 미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한다는 구실밑에 남조선에 기여들었다.

미제는 남조선을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미국에 철저히 얽매인 식민지로 전변시키고 공화국북반부를 침략하기 위한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1945년 11월 《군정법령》 제28호라는것을 조작발포하였으며 이 법령에 따라 조직된 남조선괴뢰군무력을 대대적으로 늘이고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시켰다.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은 38°선지역에서 크고작은 무장도발들을 수없이 감행하였다.

특히 1947년 1월부터 1950년 6월까지 3년반동안에 감행된 적들의 조직적인 무장도발건수는 5 150여회에 달한다. 이것은 매일 평균 4건이상의 무장도발이 진행된것으로 된다.

이에 대해 일본의 론평가 후지시마 우다이는 1975년 7월 《조선에서의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은 흔히 조선전쟁발발로 불리우는 1950년 6월 25일에 돌발적으로 시작된것이 아니고 이미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부터 시작되였다.》라고 평하였다.

미제는 침략전쟁준비를 위하여 온 남조선사회를 군사파쑈화하였으며 1950년 2월까지 북침전쟁을 위한 군사적준비를 완료하였다.

1950년 6월 17일 미국대통령 트루맨의 특사이며 악명높은 전쟁상인인 죤 포스터 덜레스가 남조선에 날아들어 괴뢰국방장관과 함께 38°선을 시찰하고 침략전쟁준비를 최종적으로 검토하였으며 북침전쟁이 개시되면 미해군과 공군무력이 남조선괴뢰군을 적극 뒤받침해줄것이라는 담보도 주었다.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은 끝끝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전쟁이 끝난지 60여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전쟁도발자의 정체를 가리우고 그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있다.

그러나 력사적자료와 사실들은 우리 공화국과 조선인민을 반대하여 무력침공을 감행한 침략자는 다름아닌 미국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전화의 나날에 있은 통쾌한 전투일화들(6)

피어린 격전은 락동강너머에서도 벌어지고있었다.두차례의 공격에서 무리죽음을 낸 적들은 아군의 한개 분대가 차지한 나지막한 고지의 앞코숭이로 땅크를 내몰았다.

적땅크를 맞받아나가는 류춘석전사의 눈앞에는 지리산인민유격대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학살당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어린 동생을 불태워죽인 원쑤놈들의 흉악한 몰골이 떠올랐다.

전사의 눈에는 증오의 불길이 무섭게 타번졌다.그는 땅을 물어뜯으며 굴러오는 적땅크를 향하여 반땅크수류탄을 힘껏 던졌다.폭음이 울리고 포연이 흩날렸다.그런데 빗맞은 적땅크는 와르릉거리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류춘석에게는 반땅크수류탄이 없었다.적땅크가 폭탄구뎅이에 몸을 숨긴 그의 옆을 지나쳤다.그 순간 적땅크에 오른 전사는 땅크웃문을 와락 열어젖히고 안전못을 뽑은 반보병수류탄을 던져넣었다.

《개놈들,이거나 먹어라!》

그가 밑으로 뛰여내리는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적땅크는 불길에 휩싸였다.두번째 적땅크에 또다시 뛰여오른 그는 땅크웃문을 잡아당겼다.그런데 안으로 걸었는지 땅크웃문이 열리지 않았다.그를 발견한 적보병들이 마구 총질을 해댔다.총탄이 귀전을 스쳤다.하지만 타고앉은 적땅크를 그냥 놔둘수 없었다.

이때 전우들이 일제사격으로 적들에게 불벼락을 안기였다.살아남은 적들은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적땅크도 돌아서더니 냅다 달아나기 시작했다.하지만 류춘석전사는 도망치는 적땅크에서 내릴념을 하지 않았다.적진에까지 가서라도 기어이 요정낼 잡도리였다.정신없이 달아나던 적땅크가 저들의 진지에 거의 이르러서야 속도를 죽이더니 땅크웃문이 열렸다.이어 적병 한놈이 머리를 내밀었다.순간 류춘석은 발뒤축으로 그놈의 골통을 내리찍으며 적땅크안에 수류탄을 던져넣고 밑으로 훌쩍 뛰여내렸다.요란한 폭음이 메아리쳤다.

적땅크에 타고앉아 놈들의 코앞에까지 가서 통쾌하게 까부신 류춘석은 유유히 아군진지로 돌아왔다.

험한 산발을 타고 북을 향하여 사람들이 걸음을 다그치고있었다.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자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였다.그들속에는 재능있는 과학자,예술인,의사도 있었고 로인들과 녀인들,어린이들도 있었다.

종군기자 림기업은 아바이로 통하는 취사원과 나란히 걸었다.취사원은 허리춤에 날이 선 손도끼를 차고있었다.

령마루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 일행은 령길을 내리고있었다.림기업은 취사원과 함께 맨뒤에서 걷고있었다.굽인돌이를 에도는 때에 《군관동지!》하고 소리치며 취사원이 그를 막아섰다.다음순간 그의 손에서 손도끼가 날아갔다.이어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얼마간 떨어진 숲속에서 도끼날에 얻어맞은 키다리양키놈이 카빙총을 떨어뜨리며 넘어지는것이 보였다.

취사원은 총을 겨누는 양키놈을 발견하는 순간 자신보다도 혁명동지를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종군기자를 막아나섰던것이다.

《취사원동무!》

림기업은 서슴없이 한몸을 내댄 그를 와락 부둥켜안았다.뒈진 양키놈은 미제침략군 패잔병이였다.털이 숭숭한 팔목에 손목시계가 여러개나 채워져있는걸 보니 산속에 숨어서 길가는 사람들을 해치며 강도질을 일삼던 놈이 분명했다.

얼마후 취사원은 림기업에게 손도끼에 깃든 사연을 들려주었다.

한달전이였다.그는 안개가 자욱한 골짜기의 개울가에서 쌀을 일고있었다.이때 안개를 리용하여 아군중대부를 노리고 기여든 적 한놈이 단도를 빼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취사원은 허리춤에 질렀던 손도끼로 그놈을 찍어넘겼다.

《땅!》하는 총소리와 함께 옆에서 달려들던 또 한놈이 꼬꾸라졌다.

취사원의 일손을 도우려고 개울가로 내려오던 한 전사가 적을 발견하고 단방에 쓸어눕혔던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취사원은 그 손도끼를 몸에서 절대로 떼여놓을수 없는 무기로 생각하게 되였으며 짬만 있으면 도끼를 갈면서 멸적의 투지를 굳히였다.

《군관동지,난 총으로도 원쑤를 족치고 이 도끼로도 찍어넘기면서 절대로 군복을 벗지 않겠습니다.》

손도끼를 들어보이며 한 취사원의 말은 림기업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그들은 북으로의 행군길을 힘차게 다그쳤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력사의 하루가 아니다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많은것이 지워지고 잊혀졌어도 평화롭던 도시와 농촌,어촌들에 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아왔던 65년전 일요일의 그날을 우리는 잊지 않고있다.력사는 조선전쟁도발자인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전쟁도발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워보려고 책동하지만 그 무엇으로써도 력사의 엄연한 사실을 외곡할수 없습니다.》

해방후 우리 인민이 맞고보낸 5년은 실로 꿈같은 나날이였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밑에 제반 민주개혁들이 실시되여 공화국북반부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였다.

자기들을 나라의 어엿한 주인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저 인민들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되여 새 생활창조의 길에 떨쳐나선 근로자들은 창조와 건설의 마치소리 높이 울리며 일터마다에서 기적과 혁신을 떨쳐가고있었다.

토지개혁의 혜택으로 봉건적질곡에서 해방된 농민들은 분여받은 자기들의 땅에 무수한 행복의 씨앗을 심고 가꾸었다.

전쟁의 포성이 울린 1950년 6월에도 우리 인민들은 민주개혁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2개년인민경제계획의 기간단축 및 초과완수의 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리고있었다.

공화국북반부의 명승지들에 꾸려진 정양소와 휴양소들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근로자들은 더 좋은 래일을 락관하였으며 새로운 혁신을 이룩할 결의도 다지였다.

이처럼 신생의 대지에 희망의 씨앗을 한창 뿌리던 우리 조국이였고 기나긴 식민지망국에서 벗어나 이제는 가슴을 펴고 살아보자던 꿈도 많던 인민이였다.

하지만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약동하던 우리 조국강토에 전쟁의 참화를 들씌워 평화를 파괴하고 인민들의 행복한 삶의 터전을 깡그리 짓밟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남조선괴뢰군은 미리 준비된 미제의 침략전쟁도발계획에 따라 미제침략군 고문들의 지휘밑에 38°선전역에 걸쳐 우리 공화국에 대한 불의의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그날로부터 시작된 3년간의 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미제의 식민지노예가 되느냐 하는 판가리싸움이였다.

미제가 일으킨 전쟁으로 하여 우리 인민이 당한 불행과 고통은 이루 헤아릴수 없다.

3년동안에 19세기의 100년간에 인류가 전쟁으로 낸 사상자수와 거의 맞먹는 500만의 사상자를 내게 된데서,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자수가 제1차세계대전때에는 95 대 5,제2차세계대전때에는 52 대 48이였던것이 조선전쟁때부터 거꾸로 15 대 85가 된데서 우리는 조선전쟁의 참혹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미제야말로 조선전쟁방화의 주범이며 동족상쟁의 불씨를 안아온 침략의 원흉이다.

하지만 침략자들은 오늘까지도 조선전쟁도발의 진상을 한사코 은페하고있을뿐아니라 적반하장격으로 우리 공화국을 《도발자》로 매도하면서 반공화국압살책동에 광분하고있다.

조선전쟁방화의 주역을 맡았던 맥아더는 《이 전쟁은 나의 계획이였다.》고 실토하면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죄행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1950년 6월 25일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단순히 지나간 력사의 하루가 아니다.

해마다 맞고보내는 6.25는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세월이 흘러도 변할수 없는 미제의 침략적본성과 함께 복수자의 각오와 의지를 더욱 깊이 새겨주고있다.

위대한 선군령장의 령도를 받는 무적필승의 혁명무력을 가진 우리 인민은 세기와 세대를 이어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를 풀고 이 땅우에 존엄높고 번영하는 통일조선을 반드시 일떠세울것이다.